영혼과 육신에 관계되는 단어
히브리 성서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인간의 본질과 특성을 지칭하기 위하여
shinpenun(nēfeš 갈망하는 인간),
reshsinbet(bāšār 몰락할 인간),
hetvavresh(rūah 전권을 부여받은 인간),
betlamed/betbetlamed(lēb 또는 lēbāb 이상적인 인간)등의 낱말을 문맥에 따라 특징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전통교리에서 말하는 영혼과 육신의 개념은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상 인간을 영혼과 육신으로 구분하여 영혼만을 귀중ㅎ하게 여겨온 시각은 고대 그리스의 이원론 사상으로부터 받은 여향 때문이다. 특히 오르페우스와 플라톤 학파는 인간을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힌 영혼으로 보았던 것이다.
nēfeš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는 대목(창세 2,7)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개별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가리킨다(창세12,5 참조). nēfeš는 본래 목구멍, 목을 뜻하는 말로서 욕구나 갈망, 영혼이나 생명 그리고 개별 인간을 가리키는 복잡한 의미로 히브리 성서에서는 사용된다. 즉 잔잔해 질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며(이사 5,14; 전도 6,7. 9 참조), 인간이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는 살 수가 없고(잠언 10,3 참조),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워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시편42,2-3 참조). 달리 말하자면 인간은 자기의 생명을 자기 자신에게서 획득하거나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욕구를 통해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을 갈망하는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진정한 자아를 의식하고(시편35,9-10; 103,1 참조)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과정에 놓인, 살아 있는 구체적인 존재라고(시편 42,6. 12; 43,5 참조)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서 bāšār는 살아 있는 인간을 구성하는 외적인 질료 곧 살[肉]이나 신체를 주로 가리킨다. 그래서 인간의 몸 전체도 표현한다. bāšār도 nēfeš처럼 인간 그 자체를 지칭하지만 육체의 면을 중심으로 인간을 표현한 것이 특징적이다(창세 2,24 참조). 그리하여 인간을 서로 연결시키는 일가 친척(창세 37,27; 느헤 5,5; 레위 18,6 참조)를 의미한다. 또한 인간의 생이 그 자체로서는 허약하고 몰락할 것이라는 특성도 부각시킨다(시편 56,5. 12; 욥 10,4 참조). 특히 하느님의 능력과 대조시켜 인간 능력의 한계를 묘사한다(예레 17,5. 7; 2역대 32,8 참조). 따라서 bāšār는 하느님의 생명력에만 의존해야 하는 인간(욥 34,14-15. 20 참조). 자기 지체 안에서는 몰락하거나(창세 6,3; 시편 78,38-39 참조) 죄악에도 빠지기 쉬운 허약한 인간 그 자체를 가리킨다(창세 6,12; 시편 65,3-4; 로마 7,5. 18 참조).
그런데 lēb 또는 lēbāb 는 원래 마음이나 심장을 뜻하는 말로 bāšār와는 달리 인간의 내적인 면에 역점이 있다. 즉 인간의 감정과 욕망의 심리적인 면뿐만 아니라 지성과 사고의 이성적인 면 그리고 도덕과 양심의 윤리적인 면까지도 지칭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가리키며, 특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도록 부름을 받은 실존자라는 사실도 강조한다(잠언 16,9; 시편 20,5; 22,7; 2역대 34,27 참조).
인간이 하느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종속관계로서의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규정하는 가장 본질적인 개념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rūah 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언제나 하느님의 손안에 있으니, 하느님께 감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말해주기 때문이다. rūah 는 원래 바람, 입김, 숨 등을 뜻하는 말로서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를 지칭한다. 그런데 rūah 는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나와 인간에게 침투되어 들어가는 것으로서(창세 2,7; 에제 36,27; 37,6-10; 욥 34,14-15 참조) 신적인 힘이나 영, 생명력 그리고 통찰력이나 의지력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rūah는 인간의 본질과 특성을 말하는 히브리 성서의 용어들 가운데 가장 신적이요, 가장 영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의 rūah라는 성서적 표현(창세 41,38; 민수 24,2; 호세 9,7; 이사 42,1 참조) 도 바로 이 점을 강하게 시사해 준다. 이와 같이 히브리 성서에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배제한 인간의 자립이나 자존을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 획득한 능력이나 전권도 부인한다(창세1,26-27 참조).
σωμα(sōma 몸)는 여러 지체들로 구성된 인간의 생물학적인 차원을 지칭한다(1고린 12,12-26; 로마 12,4-5 참조). 하지만 인간의 살과 피와 뼈만을 뜻하지 않고, 전체적이고 통일된 복합체, 곧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인간을 구체적으로 가리킨다(필립 1,20; 로마 6,12-13 참조). 이런 의미는 인간이 특히 어떤 행동의 주체나 대상일 경우 더욱 부각된다(1고린 9,27; 로마 8,13; 12,1 참조). 바오로는 σωμα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1고린 6,6. 12; 8,3. 13; 필립 3,21 참조). 이것은 인간이 죄나 육(σαρξ sarx)과 같은 세력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로마 7,14. 18. 23; 8,3. 13 참조). 또한 바오로는 히브리 성서의 bāšār용법을 반영하여 σωμα와 σαρξ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1고린 6,16; 2고린 4,10; 갈라 4,13; 6,17 참조). 이 경우 σαρξ는 물리적인 몸을 뜻한다. 하지만 σαρξ는 대부분 본성적으로 나약한 인간상을 가리킨다(로마 3,5; 6,19; 1고린 9,8 참조). 즉 자연적이고 물리적이며 지상적인 인간의 나약성을 뜻한다(골로 3,5; 1고린 1,29; 로마 8,5.8 참조).
그리하여 σαρξ의 행실들은 온갖 악행들로서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게 한다고 바오로는 강조한다(갈라 5,19-21; 로마 7,18 참조). 따라서 σαρξ는 한마디로 지상에 얽매인 세속적인 인간, 곧 하느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인간을 가리킨다. 이 개념은 πνευμα (pneuma 영)의 영향을 받고 사는 영적인 인간과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갈라 5,22-26; 1고린 2,10-16 참조). 하느님의 πνευμα없이 사는 인간은 자기 이성에만 의존하여 세속적인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1고린 2,14 참조)
πνευμα는 일반적으로 성삼위의 한 위격으로서 성령을 가리킨다. 하지만 전체 인간의 한 단면을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1데살 5,23; 로마 8,16; 1고린 2,10-11 참조). 이 경우 πνευμα는 ψυχη(psyche 혼)와 거의 같은 뜻으로(필립1,27; 2고린 12,18 참조) 인식력과 의지력을 소유한 인간, 이런 능력으로 인해 하느님의 영을 받기에 특별히 적합한 구체적인 인간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서 ψυχη는 다만 생동력과 의식이나 지식 및 의지력을 지닌, 살아있는 자연적이요 지상적인 인간을 지칭한다(1데살 2,8; 필립 2,30; 2고린 1,23; 12,15; 로마 11,3; 16,4 참조). 바오로에게서 ψυχη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지는 않지만 σαρξ의 생명으로서 자기 이성에만 의존하는 물질적인 인간을 가리킨다. 즉 하느님의 영에 따라 사는 영적인 인간과는 크게 구별된다.
그리고 νους(nous 정신)는 인식하고 판단하는 주체로서 인간을 지칭한다. 이 용어는 인간이 지적으로 이해하고 계획하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1고린 1,10; 2,16; 로마 14,5 참조). 또한 하느님께 관한 것을 알아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도 가리킨다(로마 1,20; 7,23 참조).
καρδια(kardia 마음)도 νους와 거의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는데, 살아 있는 인간의 자발적이고 정감적인 면에 역점이 있다(로마 1,24; 9,2; 1고린 4,5; 2고린 2,4; 7,3; 8,16 참조). 완고하고 뉘우칠 줄 모르는 인간의 마음(로마2,5; 2고린 3,14 참조), 또한 영적으로 굳건해 질 수 있는 인간의 마음(1데살 3,13; 갈라 4,6; 2고린 1;22 참조)도 특징적으로 지칭한다. 따라서 καρδια는 하느님께로 전향할 수 있는 인간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성서는 인간의 본질 그 자체 안에 이미 하느님의 구원의지가 표명되어 있다는 특성을 말해 준다. 특히 바오로는 죄의 세력으로 인해 상실된 인간성이 오로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회복된다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원론의 차원에서 인간을 조명했었다(로마 3-8장 참조). 그러므로 인간 중심적인 하느님의 창조행위는 인간의 구원에서 완성되고,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개방을 제시하는 성서의 휴머니즘은 인간 구원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인간의 본질과 특성 이영헌, 함께 걷는 하느님과 인간, 서울; 바오로딸, 2000, pp.15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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