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 11,1-12,44

*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단 한 번 방문한 것으로 한다.

*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의 활동을 마치 사흘 동안에 일어난 것처럼 보도하고(11~13장), 예수님의 수난기(14~15장)와 부활사건(16,1~8)을 전한다.

■ 마르 11,1-11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다 (마태 21,1-11 ; 루카 19,28-38 ; 요한 12,12-19)

*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곧 메시아로서 메시아의 왕도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즈카리야의 예언처럼 새끼나귀를 타고 오시어 민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실 겸손한 임금님이시다. 군중들은 임금님께서 행차하시는 길에 자기들의 겉옷과 나뭇가지를 깔고 환호를 한다. 이스라엘의 임금 즉위식을 연상시킨다.(참조 1열왕 1, 38~40; 2 열왕 9, 13)

* ‘호산나’란 말은 원래 유다인들이 순례 대축제일에 부른 소위 할렐시편(시편 113~118장) 가운데 나오는 일종의 청원기도로, “하느님 구원하소서” 또는 “하느님 도와주소서”(시편 118, 25)란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군중들의 환호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마르 11,12-14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다 (마태 21,18-19)

* 이틀째 되는 날, 성전 정화 사건이 일어나는데 사건 앞뒤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 저주 이야기가 소개된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하느님께 맞갖은 경배의 장소가 되지 못하는 성전이 상징적으로 연결되고,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으로서 하느님 심판을 예고하시는 메시아로 드러난다.

*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메시아로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약성경 말씀에 빗대어 하신 말씀이라 여겨진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실망이 허기짐으로 나타나고, 제 때가 아니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미 회개의 시기를 놓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말라버리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수 있는 위력을 갖고 계심을 상징한다.

■ 마르 11,15-19 성전을 정화하시다 (마태 21,12-17 ; 루카 19,45-48 ; 요한 2,13-22)

* 성전은 예루살렘 경제를 지탱하는 대들보였으며, 성전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세력은 대사제 가문이었다. 당시 로마총독이 대사제를 지명하였기 때문에 수석사제 가문은 하느님께 충성하기보다 로마에 더 충성하였다.

* 성전의 주인으로서 권위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군중을 보고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 두려움을 느끼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예수님께 성전 모독죄가 적용되어 최고의회에서 심문을 받게 된다.(마르 14, 58)

■ 마르 11,20-26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의 교훈 (마태 21,20-22)

* 무화과 나무는 예수의 복음선포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그 뿌리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킨다. 무성한 잎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제사와 경신례는 나무랄 데 없지만 정작 열매인 하느님의 정의와 거룩한 현존을 드러내지 못하는 뿌리라 할 수 있는 지도자들의 영성이 메마르고 썩어버린 성전 체제는 사라질 것이다.

* 마르코 복음은 하느님을 신뢰하여, 그분의 뜻에 자신의 삶을 개방하고 맡겨드리는 것을 믿음으로 이해한다. 기도는 그런 믿음으로 지금 여기에서 다스리며 세상을 변화 시키는 하느님의 뜻과 사랑에 따라 살게 해달라는 청원이요, 그 사랑의 길에 참여하고 싶다는 열망이다. 예수님이 가르치고 걸어 오셨던 십자가의 길은 알아듣고 받아들이기도 어렵지만, 의심하지 않고 그 길로 나서는 것이 믿음이요, 끝까지 그 길을 걷게 해 달라는 간구가 기도이다(마태 17,20; 루카 17,6 참조).

* 기도와 연관하여 예수님은 서로에 대한 용서를 강조하신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할 때, 그에게 연 마음의 문을 통해 하느님의 용서가 흘러들어 온다는 것이다.

■ 마르 11,27-33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다 (마태 21,23-27 ; 루카 20,1-8)

*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은 예수님께서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였으며, 누가 그 권한을 주었느냐고 따져 묻는다.(28절) 예수님의 행동은 성전에 대한 전권(全權)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않으시고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를 묻는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은 성전 중심의 종교 생활이 아니라 역동적인 ‘하느님의 다스림’을 선포하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초대하였다.

*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그들이 빠진 모순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대답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 마르 12,1-12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마태 21,33-46 ; 루카 20,9-19)

*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구원사 안에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상기하게 된다. 하느님(=포도밭 주인)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예언자들(=종들)을 보냈으나 이스라엘 지도자들(=악한 소작인들)이 이들을 함부로 대하여 고통을 당하거나 숨지게 하였고, 마침내 예수님(=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으나 그마저 죽게 하였으니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심판하시고, 하느님 백성(=포도밭)을 교회(=다른 사람들)에 맡기시겠다는 말이다.

* 예수님은 집 짓는 이들(=이스라엘 백성과 그 지도자들)이 내버린 돌(=십자가의 예수님)처럼 버림 받고 죽게 되겠지만, 하느님의 구원 섭리로 모퉁이(=새로운 구원공동체)의 머릿돌(=부활하신 그리스도)이 되셔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끌어 가시리라는 것이다.

*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하느님의 주도권이다.

* 이제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비유의 말씀들이 자기들을 향한 단죄의 말씀임을 알아차리고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하지만 군중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그대로 두고 떠나간다.(12절)

■ 마르 12,13-17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 (마태 22,15-22 ; 루카 20,20-26)

*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바리사이들(율법과 전통의 권위)과 헤로데 당원(세례자 요한을 죽인 정치권력)을 시켜 질문을 하게 한다.

* 당시 이스라엘은 식민 통치자인 로마제국에 주민세(인두세)를, 그것도 꼭 로마 은화 데나리온으로 바쳐야 했다. 한편 로마 황제의 통치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서기 6년 갈릴래아 출신 유다를 중심으로 열혈당을 결성하여 납세 거부 운동을 일으키고 하느님의 통치를 이룩하려고 민족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주민세를 바쳐야 한다고 대답하신다면 민족 배반자로 낙인찍힐 수가 있었고, 주민세를 바쳐서는 안 된다고 대답하신다면 로마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로 당장 고발당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며 유다인이 처한 정치적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시키신다. 황제의 권력은 유한하고 상대적이라는 뜻이 은연중에 표현된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17b절)는 말씀은 절대적인 하느님의 주권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무엇을 ‘하느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실천을 달리할 수 있다.

*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인간은 ‘하느님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황제에 대한 충성과 하느님께 대한 충성은 절대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 마르 12,18-27 부활 논쟁 (마태 22,23-33 ; 루카 20,27-40)

* 사두가이들은 모세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하였기에 죽은이들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혼법(嫂婚法)은 후사(後嗣) 없이 남편이 죽으면 시동생과 혼인하여 대를 잇는 관습으로, 본래 한 집안의 가부장 가계를 유지하여 재산과 유산을 보존하도록 마련된 방편이다.

* 예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12, 26b~27)라는 말씀을 상기시킴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영원하신 분, 인간과의 계약에 충실하신 분이심을 선언한다.

* 사두가이들은 말씀을 경청하며 순종하기보다 자기네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한 것 같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성경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예수님은 성경과 하느님의 능력을 연결시켜 통째로 보도록 가르치신다. 그리하여 늘 새롭게 주권을 가지고 움직이시는 하느님을 그분의 말씀(성경)에서 새롭게 만나고 이해하도록 이끄신다.

■ 마르 12,28-34 가장 큰 계명 (마태 22,34-40 ; 루카 10,25-28)

*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다른 계명을 해석할 때 지침이 되는 계명, 곧 계명과 율법의 기본 원리, 하느님의 뜻을 무엇으로 이해하는가의 문제이다.

* 율법학자 힐렐(BC40-AD10)은 ‘한발로 서 있는 동안 토라 전체를 가르쳐 달라’는 한 이방인의 도전에 ‘당신에게 해로운 것을 당신 이웃에게 행하지 마시오. 이것이 토라 전체이며, 나머지는 그것의 설명입니다. 가서 그것을 배우시오’라고 대답했다(바빌론 탈무드).

* 당시 유다 땅에서는 모두 613개의 계명이 통용되고 있었는데, 그 중 248개는 단순명령이고 365개는 금지명령이었다.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은 신명기 6,4-5을 인용하여 대답하신다.

* ‘마음(감성)과 목숨(생명)과 정신(이성)과 힘(능력)’을 다하여, 곧 ‘존재 전체’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신명 6,5에다 헬레니즘을 반영(정신적 가치를 중시)해 정신까지 덧붙인다.

*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구별할 수 없는 하나의 계명으로 보고 있는데, ① 누가 이웃인가? 와 ② 너 자신처럼이라는 두가지가 논의되는 점이다. 레위 19장에서 이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약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로 나온다. 반면 신약에서 이웃은 친족공동체를 넘어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로 확장된다(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 이 두 계명은 모든 계명의 근본 원리로, 계명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고 행하는데 핵심 잣대로 쓰인다는 점이 독특하다.

* 율법학자의 응답은 목숨을 빼고 정신 대신 생각으로 답한다. 언뜻 보기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듯하지만 이번에는 신명 4,35을 인용하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한 문장에 넣음으로써 두 가지 계명을 좀더 분명하게 하나로 만든다. 또 하나의 특징은 사랑이 제물보다 낫다고 말함으로써 종교의식에 대한 비판을 덧붙인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랑’이 ‘제물 봉헌’보더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다.

■ 마르 12,35-37 다윗의 자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마태 22,41-46 ; 루카 20,41-44)

* 구약 성경에 의하면 메시아는 다윗의 아들이시다. 그러나 예수 메시아는 다윗의 아들 이상이시다. ‘다윗의 자손(아들)’이라는 존칭은 이승의 예수님을 가리키는 데는 그런대로 알맞지만 부활하여 성부께로 가신 예수님을 가리키기에는 불충분하다.

*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찬양한 시편 110편의 노래를 상기시킨다. “주님(=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내 주님(=메시아, 임금으로 오실 다윗의 자손)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 이로써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정체가 확인된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신 분, 곧 ‘하느님의 아들’이시다.(사도 2, 33~36; 로마 1, 3~4절)

■ 마르 12,38-40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마태 23,1-36 ; 루카 20,45-47)

* 예수께서는 유다교의 각종 실천 행위를 모두 부정하지 않으신다. 그분이 비판하신 것은 종교지식 속에 깃든 이기주의와 탐욕, 교만, 특히 지도자와 전문가 집단의 위선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사람의 ‘마음’에 주목하신다.

■ 마르 12,41-44 가난한 과부의 헌금 (루카 21,1-4)

* 렙톤은 그리스 돈 가운데 최소단위 동전(1/128 데나리온)으로 보잘것없는 액수였다. 헌금은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그분께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