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 14,1-52

■ 마르 14,1-2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 (마태 26,1-5; 루카 22,1-2 ; 요한 11,45-53)

* 수난사화 첫머리(마르 14,1-11)는 예수님의 공생활과 수난사건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 예수의 수난 여정은 명확한 시간에 분명한 장소에서 이루어 짐으로써 역사적 사건으로 드러난다. 유다교의 중요하고 거룩한 축제와 유다의 권력자들(유다 지도자와 로마 총독)과 예수의 죽음을 명백히 연관시켜, 구원사 안에서 그 죽음이 지닌 의미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기회를 보고 있다. 갈릴래아에서부터 시작된 갈등은 세번의 수난예고에서 두드러 지다가 예루살렘에서 확고해진다.

■ 마르 14,3-9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마태 26,6-13 ; 요한 12,1-8)

*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상을 받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불청객, 잔치에는 남자만 초대된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경우는 사제와 임금을 세울 때이다. 일반도유는 환대와 존경의 표시, 치유의 수단으로 널리 쓰였다.

* 네 복음서에 다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그 전승 과정이 꽤 복잡하다.

마르코와 마태오에는 거의 같은 형태로(마르 14,3-9//마태 26,6-13) 전해지고, 루카복음에는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 죄인으로 소문난 한 여자가 회개와 감사의 표시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드린다(7,36-38). 요한복음서는(요한 12,1-8) 향유 부은 여자의 이름이 라자로와 마르타의 동기인 베타니아의 마리아로 나타난다.

* 후대에 이르러서는 도유자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 루카복음의 죄녀까지 같은 인물로 취급하여 ‘죄녀였던 막달라 마리아’로 묘사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의 도유 사건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결과로 각각 다른 여인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 ‘나르드’ 향유 란 인도를 원산지로 하는 ‘나르드’ 풀에서 추출한 향료로, 그 향유가 얼마나 값비싸고 귀한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을 감지하고 옥합을 깨뜨려 그 안의 향유를 몽땅 바칠 수 있었다는 것은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의 행위는 해방절 기간 중에 특히 강조되는 덕행이고 거룩한 의무였다. 따라서 자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때’의 절박성이 부각된다. 여인의 말없는 행위가 수난의 길을 걸으실 메시아를 축복하고, 그 길을 따라야 하는 깨어있는 제자로서의 모범을 보여준다.

■ 마르 14,10-11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다 (마태 26,14-16 ; 루카 22,3-6)

*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유다가 음모를 꾸미는 이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한다. 유다가 스승을 배반한 동기를 밝히지 않고 돈만 언급한다.

■ 마르 14,12-16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다 (마태 26,17-19 ; 루카 22,7-13)

* 무교절 첫날, 곧 목요일인데 그날 오후(유다교 월력으로 니산 14일) 3시경부터 성전에서 파스카(해방절 혹은 과월절) 양을 잡고 해가 진 다음에(니산 15일) 예루살렘 성안에서 파스카 만찬을 먹게 된다. 파스카 식사는 이집트에서의 해방과 모세를 통한 시나이 계약을 기억하고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축제의 의미가 있었다.

*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 새끼 나귀를 징발하신 것처럼, 파스카 만찬은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이층 방에서 제대로 준비되었다.

■ 마르 14,17-21 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시다 (마태 26,20-25 ; 루카 22,21-23 ; 요한 13,21-30)

* 본래 파스카 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지금 제자들은 그분의 새가족으로 함께 식사하는 것이다(3,34-35 참조).

* 배반자가 ‘너희 가운데 한 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 ‘열둘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배신의 냉혹함을 극대화시킨다. 사람의 아들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는 말은 넓은 의미에서 성경 속의 의인들의 고통, 곧 인간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여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을 반영한다(시편 41,10; 55,12-14).

* “저는 아니겠지요?” 라는 제자들의 물음에는 자기 확신이 빠져 있다. 예수님은 배반할 제자의 정체를 밝히거나 내쫓지 않으신다.

* 마르코 복음은 넘기다는 동사를 대부분 수동형으로 표기하여, 예수를 넘기는 주체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거나 ‘하느님’이라고 에둘러 표현한다(9,31; 10,33의 신적수동태). 만약 하느님께서 예수에 대한 배반을 계획하셨다면, 유다는 거기에 대한 악역을 맡았을 뿐인데 그를 비난할 수 있는가? 그런데 14,8에서는 넘기다는 동사는 능동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즉 사건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진행되지만, 거기에서 인간이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배신자를 두고 하시는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21b절)라는 말씀에서 다시 한번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되, 그의 자유는 온전히 존중하시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한 일처럼, 유다의 악행도 쓰시어 구원의 문을 여실 것이다. 관건은 그가 하느님께 돌아와 하느님의 용서를 믿고 따르는가에 달려 있다.

■ 마르 14,22-26 성찬례를 제정하시다(마태 26,26-30 ; 루카 22,14-20 ; 1코린 11,23-25)

* 최후 만찬을 파스카를 기념하는 만찬이라고 보는 공관복음서(마태 26,26~30 ; 루가 22,14~20)와 바오로 서간(1코린 11,23~26)과는 달리, 요한복음에서는 단순히 이별 만찬이라고 한다(요한 13,1;18, 28;19, 14. 31~34).

* 예수께서는 파스카 기간에 돌아가셨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시초부터 그 사실에서 신학적 의미를 성찰했다. 예수께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생명을 주기 위해서 어린양으로 희생되셨다는 것이다. 공관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파스카 식사를 하면서 제정하신 성찬례를 통하여 이를 분명히 밝힌다. 요한은 파스카 양이 경내에서 도살되는 순간에 하느님의 어린양이 돌아가셨다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말하고 있다.

* 결국 신약성경의 자료들은 역사적 사건에 근거하지만, 역사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해석하여 전해주는 것이다.

* 예수님의 최후만찬은 파스카예식의 특징적 요소인 누룩 안든 빵, 쓴나물, 질의 응답(하가다 예식)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빵과 포도주를 새롭게 해석하여 당신과 동일시 하신다.

*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다’는 빵과 포도주에 대한 유다의 전통 축복문과 연관된다. 모세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준 계약(탈출 24,8)과 주님의 종의 노래(이사 52,13-53,12)를 상기시키는 말씀이다.

*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25b절)는 말씀에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라는 긴박감과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잔치에 대한 희망이 예고된다.

* 히브리적 사고는 영육이원론이 아니다. 부분이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을 사용한다.

■ 마르 14,27-31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시다 (마태 26,31-35 ; 루카 22,31-34 ; 요한 13,36-38)

* 예수님께서는 이제 다른 제자들마저 ‘걸려 넘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즈카 13,7)는 성경 기록대로이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은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필연적인 사건임을 보여준다.

* 그러나 즈카르야 예언자의 비관적 전망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라고 희망의 말씀을 주신다.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들과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하신 곳이다.

* 베드로는 모든 이가 예수님을 배신할지라도 자신은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30절)라며, 당신이 처하실 철저한 고립의 상황을 예고하신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스승을 배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완강하게 부인하지만, 그럴수록 말에 힘이 없어진다. 나약한 인간성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 마르 14,32-42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다 (마태 26,36-46 ; 루카 22,39-46)

*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은 만찬을 마치시고 올리브 산 기슭 겟세마니라는 곳에 이르신다. 다가올 죽음의 잔을 앞두고 극도로 번민하시며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 예수님께서도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셨고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34절)고 말씀하셨다. 증인 역할을 하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하는”(38절) 제자들과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예수님께서 세 차례 기도하시고 세 차례 제자들에게 돌아오셨다는 마르코의 삼단계 구성법은 깨어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잠든 제자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잠은 수난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제자들이 유혹의 상황에 가까이 놓여 있음을 상징한다.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람어 아빠(abba)라고 부르셨는데 이는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호칭이었다.

*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간청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11,24)는 가르침대로, 그분은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선물로 응답하셨다고 믿으신다. 그래서 다가오는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확고히 따르신다. 기도는 자기를 뛰어 넘어 하느님께 가는 파스카의 길이다. 예수님은 기꺼이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는 결단을 보이신다. 이것이 ‘이제 되었다’라는 말씀의 뜻이리라.

* 겟세마니에서의 갈등 상황은 수난과 죽음의 잔이 치워지기를, 수난 시간이 비켜가기를 간청하는 인간적인 욕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자신을 내어 놓는 순명의 태도를 보여 준다.

* 교회의 전통 안에서 예수님의 겟세마니 간구는 그리스도인들의 귀감이 되어 왔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당부는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 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의 구성원들에게도 거듭 촉구되는 말씀이시다. 유혹의 상황은 매일 우리에게 실질적인 압력으로 작용하는 악의 힘이기도 하다.

■ 마르 14,43-50 잡히시다 (마태 26,47-56 ; 루카 22,47-53 ; 요한 18,1-11)

■ 마르 14,51-52 알몸으로 달아난 젊은이

* 유다가 왜 제자직을 포기하고 적대자들과 한 패가 되었는지 이유를 들려주지 않는다.

* 마태오와 루카는 칼을 빼든 이가 ‘예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하고(마태 26,51; 루카 22,50) 요한은 시몬 베드로가 대제관의 종 말코스의 귀를 잘랐다고 하는데(요한 18,10) 어찌 되었든 예수님이 체포되는 혼란스런 와중에 여러 가지 폭행사건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 무기를 들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다가오는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 긴 항변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악인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한 예레미야와 이사야, 에제키엘 등의 예언자를 떠오르게 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붙잡히게 된 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난다.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고 전한다. 이 청년이 누구였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신앙심 부족한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된다.

* 예수님의 체포 사건은 박해 상황에 놓여 있던 마르코 공동체는 물론,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는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어떤 기준으로 움직여지는지 다시 한번 신앙의 안목으로 살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