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 14,53-15,47

■ 마르 14,53-64 최고 의회에서 신문을 받으시다 (마태 26,57-66 ; 루카 22,54 ; 루카 22,66-71 ; 요한 18,12-14 ; 요한 18,19-24)

■ 마르 14,65 예수님을 조롱하다 (마태 26,67-68 ; 루카 22,63-65)

* 예수님께서 대제관 가야파에게 압송되어 신문(訊問)을 받으시는 장면(14,53.55-65)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否認)하는 장면(14,54.66-72)과 함께 보도된다.

* 담대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예수님의 모습과,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위기 상황 안에서 자신을 감추는 베드로의 나약한 태도가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들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를 붙잡아 현직 대사제 가야파의 저택으로 압송해 와서 밤중에 재판을 한다. 요한복음은 먼저 한나스라는 대사제의 집으로 끌고 가서, 예수에 대한 심문을 한나스 앞에서 실시한다.

* 예수를 잡아죽이려는 음모와 시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위기의식을 대변할 뿐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침묵이다.

* 대사제의 “당신이 찬양 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요?”라는 예수님의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으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메시야인가를 심문하고 있는 것이다.

* 예수는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라고 이제까지와는 달리 처음으로 당신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신다. 답변의 의미는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도전과 위기를 담고 있다. 예수는 다른 사람들의 거짓증언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시인이 그의 정죄의 계기가 된다.

* 대사제는 예수의 답변을 듣고 옷을 찢는다. 구약 전통에서 보면 하느님 앞에서 민족적인 죄(罪)의 통회를 할 때나 결백을 주장할 때 옷을 찢었다. 이에 대제관은 예수께 신성모독죄를 적용시켜 사형에 처할 빌미를 잡고, 함께 있던 자들은 예수를 조롱하기 시작한다.

■ 마르 14,66-72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다 (마태 26,69-75 ; 루카 22,55-62 ; 요한 18,15-18 ; 요한 18,25-27)

* ‘알다, 이해하다’는 말은 예수를 따르는데 중요한 개념이다. 사실 이제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있다’는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 예수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베드로의 모른다는 말은 진실이다. 또 다른 아이러니다.

* 증인으로서 아무 자격이 없었던 일개 하녀 앞에서 자신을 완강히 부인하였던 베드로에게서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나약하기 그지없는 비참한 인간성을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에서 하녀처럼 공권력은 없으나 가족이나 이웃의 적대감과 배척으로 신앙을 위협받는 경우가 더 자주 있다. 베드로 이야기는 ‘주의하라’는 경고이자 복음으로 들린다.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의 가이없는 사랑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마르 15,1-5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다 (마태 27,1-2 ; 마태 27,11-14 ; 루카 23,1-5 ; 요한 18,28-38)

* 대사제 가야파의 집에서 밤새 신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금요일 새벽 로마 총독 빌라도 앞으로 압송된다. 사형언도와 집행권이 없었던 유다교 지도자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처형하려고 로마 법정을 이용한 것이다.

* 유다 지방을 다스리던 로마 총독이었던 본시오 빌라도(AD 26-36년 재임)는 평상시에는 지중해변 항구 도시 카이사리아에 상주하다가 축제기간이 되면 예루살렘에 와서 정무를 보았다.

1세기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와 필로의 글에는 빌라도가 잔인하고 독단적인 사람이었다고 전해지는데, 복음사가들은 빌라도가 유다 지도자들과 군중들의 압력에 떠밀려 마지못해 예수를 처형했다는 것이다.

* 빌라도는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유다인들의 임금’이란 칭호는 로마가 임명한 ‘신하로서의 임금’ 이란 비웃음이 깔려 있다.

*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매우 애매모호하다.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듣기에 따라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는데,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자아의식을 지니셨지만 최고의회나 빌라도가 생각하는 정치적 메시아는 아니었으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겠다.

* 식민지를 통치하는 로마인의 입장에서는 피지배국인 이스라엘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으므로,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왕을 사칭했노라고 국사범으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 마르 15,6-15 사형 선고를 받으시다 (마태 27,15-26 ; 루카 23,13-25 ; 요한 18,38-19,16)

* 죄인 하나를 석방하는 로마의 축제 관례에 따라 군중은 총독에게 예년처럼 죄수 하나를 풀어달라고 요청한다. 빌라도는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하고 묻는다.(15,9-10)

* 그러나 수석 사제들은 군중을 부추겨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하게 한다. 바라빠 역시 여느 강도나 범법자가 아니라, 로마 점령군에 대한 반란군의 주도자였다고 짐작된다.

* 빌라도는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15,14) 하고 예수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시도하지만, 빌라도의 항변은 군중의 함성에 압도된다. 그는 예수를 풀어줄 경우, 황제를 배척했다고 자신을 고발할세라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면서도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십자가형에 처하기로 타협한다. 빌라도와 수석사제, 군중의 관계는 요한을 죽인 헤로데, 헤로디아와 그의 딸 살로메의 관계와 비슷하다. 요한과 예수의 운명이 다시 겹쳐진다.

* 십자가형은 맹수형, 화형과 더불어 노예나 식민지인에게 내려지던 가장 참혹한 형벌중의 하나였다.

■ 마르 15,16-20 군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다 (마태 27,27-31 ; 요한 19,2-3)

예수님께서는 십자가형 언도를 받은 다음, 로마 형법에 따라 총독 관저 앞 광장에서 로마 군인들에게 편태와 조롱을 당하신다. 그들은 예수님께 자색 옷(왕가의 전통복장)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서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하고 외치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는 흉내를 내는가 하면,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으며 조롱한다.

*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고통스런 채찍질이 내려지면서 형장으로 옮겨진다. 유다인들은 가장 많이 때릴 때 39대까지 때린 데 비해 로마인들은 마음내키는 대로 때렸다.

■ 마르 15,21-32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마태 27,32-44 ; 루카 23,26-43 ; 요한 19,16-27)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처형 당하시기 위해 총독 관저에서 골고타 형장으로 끌려가신다. 그 낱낱의 과정들이 지극히 절제된 감정으로 단순하고 간결하게묘사되고 있다.

* 예수님께서 가혹한 채찍질로 이미 기진하셨으므로 지나가던 사람을 붙들어 강제로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한다. 시몬은 자의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짐으로써 세상의 불의와 거짓을 드러내는 예수 죽음의 증인이 되었으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제자직분을 실현하고 있다.

*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예수의 죽음에 연관된 시몬처럼, 살다가 뜻하지 않게 갑자기 고난의 현장에 끌려들어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던 이 만남의 의미는 무엇일까?

* 예수님께서 끌려가신 곳은 북부 성벽 밖 서쪽에 위치한 골고타로 현재 성묘성당이 세워져있다. 해골이라는 뜻의 골고타(아람어)가 라틴어로는 갈바리아(Calvaria)이기에 처형 장소를 갈바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16,24a)라고 지극히 간결하게 서술한다.

* 예수님께서 처형되신 시각을 마르코는 예수의 수난기를 세 시간 간격으로 나누어, 빌라도 법정에 서셨을 때가 오전 6시, 십자가 처형이 오전 9시, 그리고 정오에 이르러 어둠이 세상을 덮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다(15,33-34)고 전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돌아가셨다는 마르코의 의도적인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 죄명 패 : INRI =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예수님의 죄명은 명실 공히 로마제국의 국가질서를 위협한 국사범이다. 예수님을 조롱하는 이 말은 극도의 아이러니 속에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 심지어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님을 비아냥거리며 조롱한다. 마르코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만인에게 철저하게 버림받고 모욕당하시면서 고독하게 돌아가셨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 마르 15,33-41 숨을 거두시다 (마태 27,45-56 ; 루카 23,44-49 ; 요한 19,28-30)

* 예수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절정의 시각, 예수님의 죽음을 애도하듯 정오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된다. “그날에 나는 한낮에 해가 지게 하고 대낮에 땅이 캄캄하게 하리라”(아모 8,9)는 아모스 예언자의 ‘주님의 날’ 예고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아람어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곧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탄원하신다. 탄원기도인 시편 22편의 한 대목으로, 표면적으로는 하느님마저도 자신을 버렸다는 고독감과 절망감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그러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매달려 절규하고 그분 안에 의탁하는 지극한 신뢰심을 보여주는 기도이다. 시편 22편은 24절부터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바뀌는데, 첫구절을 인용하여 그 책이나 기도문 전체를 가리켰던 관행을 반영한다.

*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바로 이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지고, 예수님의 임종을 지켜보던 로마인 백인대장이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고 고백한다. 복음서를 통틀어 지금까지 메시아 비밀로 감추어졌던 예수님의 정체가 만천하에 환히 드러나는 것이다. 형을 집행하던 이방인이 유일하게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알아보는 역설적인 사건이다.

* 대제관 홀로 그것도 일 년에 딱 한번, 속죄의 날에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의 구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지성소에 현존하신다고 믿었던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 모든 이에게 활짝열렸다. 예수의 죽음이 성전체제를 무너뜨린 것이다.

* 이 모든 십자가 사건의 증인들로 여성들이 남아 있다. 남자 제자들은 모두 떠난 자리를 여제자들이 멀리서나마 지키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잇는 연결고리이자, 부활하신 주님과 제자들을 잇는 생명줄이 될 것이다. 마르코는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만이 참제자라고 보고 여인들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각시킨다.

*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고, 그 밖에도 예루살렘에 올라 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따르다’(avkolouqe,w)와 ‘시중들다’(diakone,w)는 제자직분의 내용을 고유하게 표현해 주는 단어이다.

“예수와 그분의 하늘 왕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분의 십자가를 견뎌내는 이들은 거의 없다”(준주성범 11,1).

■ 마르 15,42-47 묻히시다 (마태 27,57-61 ; 루카 23,50-56 ; 요한 19,38-42)

* 최고의회 의원 중의 하나였던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달라고 청한다. 나무에 달려 죽은 사람은 당일에 묻으라는 율법 규정에 따라(신명 21,22-23) 사형수의 시신을 당일에 묻는 것이 팔레스티나의 관례였던 것이다. 빌라도는 유다인의 관행을 존중하여 백인대장을 불러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요셉에게 시신을 내준다.(15,44-45)

* 일몰과 더불어 시작될 안식일 겸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기 전, 서둘러 장례를 치르려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아마포로 싸서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입구를 돌로 막아 놓는다. 장례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서둘러 짧은 시간에 약식으로 치러진 장례임을 알 수 있다.

* 예수님께서 안장되시는 것을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안장의 증인이 될 뿐 아니라, 앞으로 부활의 증인이 됨으로써 참제자의 직분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