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아시리아 같은 막강한 외세의 침입으로 위험한 시기에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과 이런 백성이 아름다우며 용기있고 하느님께 충실한 여인 유딧을 통하여 구원받았다는 사실 전한다.

역사적인 작품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신뢰, 기도의 효과, 모세 율법의 성실한 이행 및 연약한 연인을 통하여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순종과 성실성을 가르치려는 교화적 이야기.

▶ 구조

① 아시리아인들이 팔레스티나를 침공하여 베툴리아를 포위(1,1-7,23)

② 유딧이 네부카드네자르 군대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죽임으로써 백성을 구원(8,1-14,10)

③ 이스라엘이 적들에 대해 승리를 걷은 후 하느님께 찬양(14,11-16,25)

▶ 내용

당시 남유다 임금은 ‘아하즈’였는데(재위 B.C. 736-716) 조공을 바치며 아시리아의 종교를 받아들였고 왕자를 죽이는 끔찍한 제사를 바쳐 그들을 안심시켰다. 예루살렘에 이교도의 제단을 모방한 ‘청동제단’을 만들었고 향을 피워 섬기게 했다. 우상숭배에다 비굴한 과잉충성이었다(2열왕 16,10-11). 지도자들이 이러했으니 백성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민중의 계몽을 위해 등장한 설화가 유딧기다.

성경의 첫 장면은 아시리아 왕 ‘네부카드네자르’와 메디아 임금 ‘아르팍삿’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싸움의 승리를 위해 아시리아는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비롯한 인근 국가에 사신을 보내 협조를 구한다. 하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이긴 아시리아는 협조를 거절했던 나라들을 응징한다. 이를 위해 임명된 책임자가 ‘홀로페르네스’였는데, 그는 여러 민족을 초토화한다. 소식을 접한 이스라엘은 전전긍긍하면서 전투준비에 임한다. 대사제는 온 백성과 함께 주님의 도우심을 청한다. 유다인들이 또 다시 포로로 끌려가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울부짖는다.

팔레스티나 땅의 조그마한 성읍이면서도,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다른 지방으로 가는 길목들을 내려다보는 전략적 요충지인 베툴리야가 포위된다.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 저항군을 포위하며 그들의 식수원을 차단한다. 마실 물이 고갈되자 백성들은 흔들린다. 그 때에 신심 깊은 한 과부(‘유딧’)가 이 성읍에서 나가 적군의 진지로 간다. 유딧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적장 홀로페르네스는 그녀를 꾀려고 연회를 여는데, 자기가 술에 잔뜩 취하고 만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유딧은 적장의 목을 베어 버린다. 이로써 침략군이 패주하게 된다.

유딧기에는 어떠한 기적도 비상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한쪽에서는 야심과 관능 또는 공포로, 그리고 유딧 쪽에서는 반대로 신앙과 용기에서 나오는 인간적 정열의 결과로 펼쳐진다.

유딧기는 율법의 세부 사항들에 관하여 일종의 무관심을 드러낸다. 유딧은(16,24 참조) 자녀가 없는데도 신명기의 규정(25,5-10)에 따라 수숙혼(嫂叔婚)을 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또 율법이 금하는데도(신명 23,4; 느헤 13,1-3 참조) 암몬 족인 아키오르가 이스라엘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진다(유딧 14,10). 그 바탕에는 율법에 관한 유연한 이해가 깔려 있다.

고통은 언제나 백성이나 개인이 저지른 죄에 대한 징벌은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내리시는 시련이며, 또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8,25-27). 유딧은 자기 민족이 과거처럼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심을 잃지 않는다. 자기들이 포위되어 겪는 곤궁은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진노하신다는 징표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백성의 구원과 거룩한 성읍의 보호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더 높은 덕을 실천하라는 그분의 부름이다(8,21-24). 고통을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배려의 표시로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8,25).

유딧이 지닌 능력의 근원은 신앙이었고, 그의 신앙은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사람과는 달리 으르거나 달랜다고 해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다리면서 도와주십사고 간청합시다”(8,16-17). 그리하여 주님은 젊은이들도 아니요 힘센 장사들도 아닌 연약한 한 여성의 손에 강력한 홀로페르네스를 붙이셨다.

유딧의 이야기는 ‘의로운 혁명’이나 독재자를 살해하는 것이 정당한가 정당하지 못한가를 토론하는 계기가 된다. 아주 긴급한 상황에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가? 특히 보다 더 심각한 피의 폭력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라면 폭력이 허용될 수 있는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이나 백성을 살해하는 폭력, 자유를 통제하는 일 등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저항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저항이 폭력이 없이도 가능한지, ‘폭력의 포기’가 점점 악화되고 심각해지는 폭력의 상황을 외면하거나 오히려 더 조장하는 것이 아닌지 등은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폭력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써 ‘새로운 폭력’이 필요하다고 결정한다면, 이런 결정은 ‘질서’에 결코 기여하지 못한다.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생명의 질서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유딧은 이렇게 노래한다. “당신께서 말씀하시자 생겨났으니 모든 조물은 당신을 섬겨야 합니다. 당신께서 영을 보내시니 그것들이 지어졌습니다. 당신의 목소리에 거역할 자 하나도 없습니다”(유딧 16,14). 인간이 만드는 그 어떤 것도, 정복의 의지도 자연의 힘도 하느님을 거역할 수도 맞설 수도 없다. 유딧은 이렇게 말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들을 당신께서는 가엾이 여기십니다”(유딧 16,15).